신앙나눔
호수와 같은 사람(11.26)
스승이 한 젊은이를 제자로 두었는데 제자는 무슨 불만이 그리도 많은지 늘 불평을 늘어놓았다고 합니다. 하루는 스승이 제자를 불러서 소금 한 사발과, 마실 물을 한 컵 가져오라고 시켰습니다. 제자가 준비하여 오자 스승은 소금을 한 줌 컵 속에 넣은 다음에 그 물을 마시게 하였더니 제자는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스승이 물었습니다.“맛이 어떠냐?”“짭니다.” 스승은 제자를 호수로 데려가서 아까와 같은 양의 소금을 호수에 집어넣고 휘휘 저어 그 물을 마시게 한 다음, 다시 물었습니다.“맛이 어떠냐?”“시원합니다.”“짜지 않냐? “안 짭니다.”스승이 말했습니다.“인생의 고통은 소금과 같다. 짠맛의 정도는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지. 네 속에 고통이 있다면, 네가 컵이 되지 말고 호수가 되어라.” 자신 안에 소금을 갖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즉 고통이 없는 인생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의 이야기는 고통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지혜를 줍니다. 우리는 대체로 고통스런 일이 자신에게 안 일어나기를 바라며 고통스런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빨리 사라지기를 기도하는데 그런 바람과 기도는 아주 자연스런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예수님도 고통으로 괴로워하시면서 그 고통의 쓴잔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통을 겪게 마련인 것이고, 또한 그 고통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바람만으로는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이야기처럼 자신이 물 컵과 같은 사람의 수준에서는 아무리 기도해도 고통의 쓴맛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신이 호수와 같은 사람의 수준으로 올라가면 쓴맛을 빼내지 않아도, 쓴맛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쓴맛 대신 시원한 맛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 컵과 같은 사람에서 호수와 같은 사람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물 컵과 같은 존재에서 쓴맛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물 컵과 같은 사람이 호수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렵기는 하지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렵더라도 가능한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처음에는 고통의 쓴잔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셨는데 나중에는 자신의 뜻대로 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지만 그냥 하나님이 알아서 하나님 마음대로 처리하라는 것, 하나님의 처분에 자신을 내맡기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운명을 하나님께 내맡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바에 반하는 것이라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께 내맡기는 순간, 우리의 존재가 물 컵의 수준에서 홀연히 호수의 수준으로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신비로운 일인데 이 신비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하나님께 내맡기는 일 또한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의지로는 하나님께 내맡기려 하는데 뭔가가 뒤에서 발목을 잡아당기며 방해를 합니다. 혹은 하나님께 내맡겼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서면 다시금 자신의 뜻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셨던 모양입니다. 예수님께서“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라는 기도를, 시차를 두고 세 차례 반복하셨는데 왜 똑같은 기도를 세 차례나 반복하여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도 하나님께 내맡기는 일이 쉽지 않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통을 겪는데 그 고통은 우리가 호수와 같은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됩니다. 고통이 하나님의 은총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고통으로 인해 호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천안새로운교회 가족모두도 호수 같은 사람이 되셔서 고통을 시원한 물을 마시듯 기꺼이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