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시작하시며 먼저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불가항력적인 권위로 제자들을 부르셨고, 그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예수님을따랐습니다. 왜 하필 예수님께서는 어부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가리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사람을 낚는다.”라는 표현은 이미 구약성경 예레미야 16:16에 나타난 바 있습니다.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라는 대목에서 나타나는 이 이미지는 원래 심판의 이미지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구원의 초대로 바꾸시고 직접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심판의 메시지가 구원의 도구로 변혁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르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곧’, ‘……을 버려두고’ 따릅니다. 이 사이에는 아무런 조건도, 흥정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른 이후에도 그들에게 세상적인 복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반해 오늘날 우리들이 보이는 헌신의 모습에는 ‘따름’ 그 자체는 있을지 몰라도, ‘곧’ 따름, ‘버려두고’ 따름은 잘 찾기 힘든 것 같습니다. 심각하게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참된 제자도의 길에 서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시고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헌신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최고, 최선의 전략은 바로 사람입니다. 목회 방법, 프로그램, 조직과 제도, 이러한 것들을 만드신 적이 거의 없으신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 동안 하신 일은 제자를 양육하는 일이었습니다. 종교 개혁가들은 세 가지 개혁을 염두에 두고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첫째, 교리의 개혁이었습니다.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둘째, 예배의 갱신이었습니다. 미신적인 예배 요소를 다 빼고 하나님 앞에 기도와 찬양, 그리고 말씀 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사역의 개혁이었습니다. 모든 성도를 사역자로 세우는 개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사제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성직자와 평신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안수 받은 사역자와 안수 받지 않은 사역자가 있을 뿐입니다. 모든 성도는 사역자라는 것이 개신교 종교개혁의 출발점입니다. 천안새로운교회 가족여러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부름을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취미생활이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처럼 우리들도 제자의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