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깨끗하게 하심
 
마태는 예수님의 성전 정화에 관한 짧은 이야기에 회복이 일어나는 자료를 덧붙임으로써 이 이야기의 요점을 다시 명백하게 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심판을 완화시킵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토기장이의 옹기를 깨뜨리는 예레미야의 극적인 비유(렘 19:10)와 비교할 수 있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이 장면은 성전 자체로부터 성전이신 주님에게로 초점을 옮기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어린아이들의 외침을 인용함으로써 이 단락 전체가 기독론적인 것이 됩니다. 메시야는 옛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정죄하심과 동시에 그의 현존에 의하여 맹인이 다시 보고, 저는 자들이 온전해지는 회복의 장소로 변화시킵니다. 교회의 개혁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개혁교회의 아버지 칼뱅도 “교회가 교황 제도가 지니고 있는 미신적 신앙에 굴복하고 이를 고집스럽게 간직하고 있어서, 이 깊은 수렁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현실의 교회는 잘못을 범하기 쉬운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죄로 가득 찬 교회입니다. 역사를 통틀어서 볼 때, 교회의 역사는 깊은 죄악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거룩함은 구성원들의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행위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따를 때 거룩해집니다. 교회는 교회가 해야 할 본연의 일이 있습니다. 시대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생활양식이 바뀐다 해도 교회 본연의 사명은 망각해서도 안 되고 사명이 변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 교회는 두말할 것도 없이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함이란 아름다움이라는 말과는 다른 말입니다. 아름다워도 거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름다워도 거룩하지 않은 교회가 있다면 그런 교회는 구원의 방주와는 거리가 멀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구원에 있고, 교회의 생명은 거룩함에 있습니다. 교회의 외형적 대형화가 교회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없고, 그것이 교회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교회의 부흥인 것처럼 착각하고, 그것을 목회 혹은 교회의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 자체로 거룩한 곳입니다. 주님이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거룩하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천안새로운교회 가족여러분,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시고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