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나눔
(2016.2.21)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이사야 시대에 스스로 자신이 신앙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던 사람들은 종교를 연구와 의식 행위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회는 모든 관계와 산업의 영역에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며 약한 자들을 착취하는 구조가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가운데 선지자는 노예를 해방시키시고, 광야에서 먹이시고, 가나안을 허락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다시 한 번 기억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마음을 함께 하여 진실하게 행하는 자들의 편에 서시며 그들을 돕는 분이십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돌보시는 분(신 10:18-19)이시며 예수님은 그 자신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와 동일시하였습니다(마 25:31-46). 따라서 이웃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주고, 공동체 모두가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실현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그 형식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그 마음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엎드렸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예비하시고 채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보다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우리 자신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분을 닮아가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빛과 생명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속에서 빛과 생명으로 일하시고 계십니까? 그 빛과 생명이 내 속에서 흘러넘쳐서 또 다른 이에게 빛과 생명이 되고 있습니까? 제네바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의 이상을 힘껏 펼쳐가던 칼빈은 심한 반대에 부딪혀 그곳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1541년 제네바 시의회가 그를 다시 초청했을 때 칼빈은 제네바에 돌아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설교했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진심으로 나를 다시 부르는 것이라면 여러분 가운데 만연해 있는 범죄와 성적 방탕함을 청산하십시오. 내 생각에 ‘복음의 가장 큰 적’은 교황도, 이단도, 유혹하는 자들도, 독재자도 아닙니다. 복음에 대해 가장 큰 적은 바로 ‘나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착한 행실이 없는 죽은 믿음이 무슨 쓸 데가 있겠습니까?” 칼빈의 이 외침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또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우리 모두가 깊이 새겨들어야 하는 말임에 틀림없습니니다. 천안새로운교회 가족여러분,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도 세상의 유익을 구하는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참으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