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와 용서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입니다. 용서에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교회에 처음 온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함으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 땅에서의 생이 마감되고 천국에 들어갈 때에 용서의 문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심판대 앞에서 우리는 또 다른 용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존 브록만이 쓴 「지난 2천 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이란 책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지성인 110명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121가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지우개입니다. 지우개가 없었다고 한다면 데생이나 스케치가 불가능했을 것이고 작곡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과거를 지워 주는 용서의 지우개가 없었다고 한다면 아브라함도, 다윗도, 모세도,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5개의 긴 설교가 있는데 오늘 본문인 18:21~35은 그 네 번째 설교입니다. ‘교회생활 설교’ 혹은 ‘신앙공동체 설교’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용서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21~35절의 말씀은 베드로의 질문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교회에서 공동체가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을 범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을 따르려면 용서를 해야 하는데, 어디까지 얼마만큼 용서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베드로의 질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랍비들은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한껏 너그러운 마음을 품었다고 생각하며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제한적인 용서, 이것이 천국의 용서요,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실천해야 될 참된 용서라고 하는 메시지입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일만 달란트나 빚진 자의 이야기를 통해 용서를 실천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도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나도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이 천국의 용서윤리입니다. 천안새로운교회 가족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에 감사하고 감격하면서 타인을 향한 용서에 대해서도 마음을 여시기 바랍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