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길에서 만난 예수님(눅7:11-17)
우리의 인생에서 만나는 네 가지의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1. 죽음의 힘입니다. 꽃, 새, 개, 고양이, 곤충, 물고기, 사람, 모든 살아있는 것은 죽음의 시간을 맞이합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9:27)고 말씀했습니다. 아무도 예외가 없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미인이나 보통사람이나, 노인이나 청년이나 누구나 죽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 역시 죽음을 피하지 못하였고, 마을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메고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2.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을 수 있게 하고, 모든 것을 견디게 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나인성 사람들은 일찍이 남편을 먼저 보내고, 이번에는 아들까지 먼저 보낸 이 과부의 딱한 형편을 생각하면서, 그 아들의 시신을 메고 나인성을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생활대책이 없어진 그 과부는 그 마을사람들의 동정과 사랑에 기대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눈물의 힘입니다. 이 과부는 슬피 울며 상여와 함께 나오고 있었습니다. (눅1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하시고.” 신앙인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와 그의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눈물은 우리를 기적으로 인도합니다. 눈물은 치유와 회복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4. 생명의 힘입니다.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힘은 죽음의 힘, 사랑의 힘, 눈물의 힘이었고, 또 하나의 가장 위대한 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생명의 힘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두 행렬이 만났습니다. 한 행렬은 슬퍼하는 엄마와 죽은 아들과 동네사람들의 행렬이었습니다. 그 행렬은 죽음과 슬픔과 절망의 행렬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또 하나의 행렬이 다가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과 따르는 사람들의 행렬이었습니다. 죽음의 권세와 생명의 권세가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한번 손을 대시며 명령하시니까, 죽음은 물러가 버리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들의 슬픔은 기쁨과 축제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슬픔이 소망과 새 생명으로 바뀌었습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자신에게 죽음이 올 때, 그것을 멈추실 수 있었지만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죽은 청년이 살아났을 때,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눅17:16).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고통을 보시고,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우리의 슬픔을 보실 때, 우리를 마음과 몸과 영혼을 만져 주셔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천안새로운교회 가족여러분, 예수님께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맡겨드리십시오. 우리의 모든 슬픔과 눈물이 변하여 기쁨과 소망이 넘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