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눅12:13~21)
유대인들은 문제가 생길 때 지혜로운 랍비에게 찾아가 방법을 묻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어떤 사람이 재산 분배 문제 때문에 예수님께 찾아와서 해결 요청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지혜 있는 랍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욕심꾸러기 형의 불의를 고발했습니다. 부모의 재산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장자의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형제들은 장자가 나누어 주면 감사하고, 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문화입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많이는 안 주어도 상식 수준의 분배를 해줍니다. 그런데 오늘 이 형은 동생에게 하나도 나누어주지 않아서 예수님께 와서 형을 고발한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재산 분배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거절을 하시고 부자에 관한 예화를 들려주십니다. 부자는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12:19)고 말합니다. 한 번 농사지어서 여러 해를 먹지 못합니다. 대체로 그 다음해까지만 먹을 수 있습니다. 현대에도 보관을 철저히 해도 2년 넘은 농산물 처리는 부유 국가들의 큰 고민거리입니다. 오늘 말씀은 계획성 있게 노후 대책을 잘 세우는 일이나 자녀 교육을 위해서 절제하는 생활을 무시하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쌓아두는 그 자체에 행복의 가치관을 두는 것을 예수님이 책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부자는 많은 곡식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결국 쌓아둘 곳간을 건축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습니다. 영혼의 평안이 행복이라고 믿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재물을 가지고 영혼의 행복을 협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네가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눅12:20). “네 형이 욕심을 부려서 마땅한 유업도 분배하지 않는다고 너무 고통스럽게 생각하지 마라. 차라리 손해를 보고 살아라. 너는 영혼 구원과 영생에 관심을 두라.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를 찾아온 보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께서는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상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마태복음 13장의 밭에 감추인 보화의 내용을 보면 어떤 사람이 남의 밭을 갈다가 그 밭에 값진 보화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영생 진리를 발견한 다음에는 영생을 위해서 자기의 어떤 것이라도 다 희생한다는 것입니다. 마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헌금한 것과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친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어떤 강도가 와도 못 가져갑니다. 창고를 새로 짓고 곡식 좀 쌓아두었다고 영혼을 달래는 부자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 있습니다. 천안새로운교회 가족 여러분, 내 창고에 쌓여있다고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눅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나님께 부요한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