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자리에 앉으라(눅14:7~24)
 
오늘 본문에는 청함에 대한 비유가 세 번 나옵니다.
 
1. 청함을 받음 사람이 높은 자리를 택함.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눅 14:7-9.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혼인 잔치에 청함 받았을 때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는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질 천국 잔치를 상징합니다. 잔치에서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 지는 주인이 결정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에서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 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율법의 의로는 자신들이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준은 달랐습니다. 눅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나님 나라에서는 자기 의로 가득한 사람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가 하나님 옆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2. 잔치를 베풀 때 초청할 대상.
눅 14: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눅 14:13-14.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형제나 친척이나 부자 이웃을 초청해서는 안 된다거나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만 초청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두 세계를 살고 있는데 하나는 눈으로 보이는 현실 세계이고, 또 하나는 부활과 함께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현실 세계가 전부인 사람은 나에게 보상을 해 줄 수 있는 사람, 나를 잘 되게 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마음을 쏟게 되고, 나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마 6: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나에게 아무 보상을 해 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며 조용히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3. 큰 잔치에 초청.
어떤 사람이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청했는데 사람들이 여러 변명을 하며 그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는 비유입니다. ‘나는 밭을 사서 나가 봐야 해’. ‘나는 소 열 마리를 사서 시험하러 가야 해’ . ‘나는 장가 들어서 가지 못하겠어’. 눅 14:21.23-24.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이 비유는 예수님이 누가복음 15장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이유를 잘 설명해줍니다. 마 25:40.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천안새로운교회 가족여러분,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것을 기대하며 끝자리에 앉기를 결단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상급을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는 경계가 없이 확장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