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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신에 대해
1·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낙관론을 버리고 회의주의와 상대주의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대주의적 체계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심겨져 있기 때문입니다(전3:11).
죄악으로 왜곡된 인간은 하나님에게 눈을 돌리지 못하고, 신비주의나 강신술 등을 통하여 만족을 얻고자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기독교 내에도 발견되는데 신자들이 신령하다는 집회를 찾아다니며 귀신을 쫓는 목사는 능력이 있고 그런 목사는 하나님이 특별하게 쓰시는 종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듯합니다. 입신과 엑스터시는 특히 기독교의 신비와 신비주의 사이에서 분명한 위치가 설정되어 있지 않는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1. 입신
1) 신내림
사람이 정신적 이상의 상태나 최면효과에 걸려 전간(癲癎) 상태에 이르게 되면 엑스터시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신들린다'또는 '신내린다'고 하는데, 이 표현이 계속 발전하여 '신난다'라는 말이 되었습니다. 신내림의 경우는 대체로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거나 질병이 있을 때, 또는 꿈의 계시에 따르는 것에서 생깁니다. 신내림을 받은 사람은 인간의 운명이나 사회의 장래를 예견한다든지, 신의 계시를 말한다든지 하는 초월적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2) 무당의 입신무당은 세습무와 강신무(降神巫)로 나뉘는데 이중에서 강신무가 입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세습무란 혈연적 관계에 따라 세습적으로 무당이 되는 것으로 직업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무당으로서는 우월한 입지를 가집니다.
그러나 강신무는 '영험'이라고 불리는 신비 체험을 통하여 무당이 되었기 때문에 조직적인 입지는 약하나 영적인 능력에 있어서는 탁월합니다. 이들은 입신 상태에 쉽게 들어가 초월적 능력을 발휘합니다. 강신무는 다시 남방형과 북방형으로 나뉘는데 남방형은 신비체험에만 머물고 북방형은 천계나 지하세계를 마음대로 드나든다고 합니다
.3) 기독교의 입신꽤 오래전부터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입신'(入神)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중에는 천국을 보고 왔다고 하는 이들도 있고 소위 '은사집회'에서 '입신'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주장에 대하여 무조건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입신'이라는 용어자체는 미신적이지만, 성경에는 그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들 중에서는 거짓을 말하는 자도 많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믿지 말고 성경에 근거하여 판단해야합니다(예를 들어 펄시콜레(P.Collet) 같은 이는 엄연한 거짓말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에서도 거짓으로 간증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간증이나 주관적인 체험들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직 성경뿐입니다. 예언하는 자는 에언하는 자의 제제를 받아야 하고 특히 모든 것이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영을 분별하지 않은 채 아무 영이나 받을 때 이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들이 비록 기독교적으로 채색되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무당들의 경험과 거의 흡사합니다.
2. 엑스터시
1) 역사적 실례
엑스터시(ecstasy)는 감정이 고조되어 자기 자신을 잊고 무아도취(無我陶醉)의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적으로는 의식이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일시 정지되어 자아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되는 정신상태를 말합니다. 기독교의 역사에 신비경험이 강하게 나타난 것은 스콜라 신학이 절정에 달한 14세기와 종교개혁과 르네상스가 있었던 17세기입니다.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엑스터시는 낮은 문화수준에서 자주 발생합니다. 엑스터시는 전대중들에게 전염병처럼 퍼집니다. 수백만의 무지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십자군 전쟁, 중앙유럽에서 발생한 무도광(성비루스의 춤)의 소요, 18세기초의 프랑스 경련자들(Convulsionists), 영국 감리교인들 가운데 뛰는 자들(Jumpers) 등이 있습니다.
2) 엑스터시의 상태엑스터시는 반 시간에서 5일 이상까지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엑스터시 상태에 있는 핀으로 살을 찔러도 아무런 느낌을 가지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많은 순교자들이 고통을 거의 느끼지 않고 죽었거나 고문을 받았다는 사실로서 증명이 됩니다.
이러한 엑스터시는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극히 다양한 형태의 단일한 관념 속에 오랫동안 몰입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엑스터시가 객관적 진리의 계시로서 가치를 가질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트랜스의 '경험'이 절대적 진리와 접촉한 증거 계시의 진리성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엑스터시는 하나님에 대해 크고 고결한 사랑을 간직한 사람에게만 나타납니다.
3. 성경에 나타난 엑스터시엘리야의 엑스터시(왕상9:11-18), 다윗의 엑스터시(삼하6:12-23), 아브라함이 깊이 잠든 중에 본 환상,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씨름한 것,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본 환상과 환청 등은 엑스터시적인 특징을 나타냅니다.
그외에 이사야와 예레미야, 아모스, 에스겔 등도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이다(사 6장; 암7장-9장; 겔2:2; 겔3:14).교회는 엑스터시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은 기도, 바람 같은 불, 방언 등은 엑스터시적인 현상입니다. 베드로가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과 환청을 체험한 것, 스데반의 환상, 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건, 성령에 붙들려 소리를 듣고 환상을 보았던 요한 등은 엑스터시를 경험한 것입니다.기독교의 신비체험은 종종 무속으로 간주되거나 무속이 기독교의 신비체험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한 평가가 아닙니다. 건전한 신비체험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의식이 뚜렷한 상태와 도덕적, 지성적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누리는 체험일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무엇보다도 성경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이지만 신비주의는 아닙니다. 우리는 신비적인 것들을 대할 때 그것을 무조건 추종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기준으로 삼아 바로 평가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주의 영은 인격적인 성령님이신데 비 인격적으로 웃고 넘어지고 하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사람을 넘어뜨리는 것은 실상이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바라기로는 그러한 집회에 참석하시는 것을 삼가하셔야합니다. 분별력이 없는 영혼들을 미혹하는 악령의 역사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다음(daum)에서 탐색창에 에스라 하우스를 치면 에스라 하우스 홈페이지에 갈 수 있습니다.]-에스라 하우스 질문과 답에 가시면 더 자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