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나눔
거듭나야 합니다(4.20)
강아지로 태어나, 새처럼 날려고 하는 것은 무모한 것입니다. 한번 강아지는, 영원한 강아지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면에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육을 가지고 영의 길을 따르려고 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니고데모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도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있었으며 하나님을 위한 열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의 고민은, 아무리 애를 써도 하늘을 날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거듭나야 한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육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열심, 노력,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무엇입니까? 금이 되려면 용광로에서 녹아져야 하고, 제련소에서 다시 정금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의 열심도 ,갈망도, 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영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한번은 걸러져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련되지 않은 금은 사용 할 수 없듯이 영으로 나지 않은 육은, 언제나 벽에 부딪치곤 합니다. 쉽게 한계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주를 향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주를 향한 열정이 식은 것도 아니고, 주를 향한 사랑이 변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막상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려 하면 커튼이 가리웁니다. 무엇인가 가로 막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육을 가지고는, 결코 주님을 온전히 따를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육을 가지고는, 영의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의 권능을 입히우기 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할 수는 있으나, 무익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하여 규모 없이 분주하다는 것은, 성령의 권능이 약하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결심과 의지와 노력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육은, 몇 걸음 못가서 발병 납니다. 우리는 경험합니다. 예배 잘 드린 사람이 화를 벌컥 낸다든가. 기도 후에 짜증으로 충만하다든가, 은혜가운데 살다가 갑자기 어둠에 사로잡힌다든가... 이것이 우리 육의 실체입니다.
더 나아가, 육의 실체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각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도 하시지만, 생각에 빠지면 사단이 틈을 탑니다. 우리의 거듭나지 않은(영의 터치가 없는)생각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의 생각대로 결정하고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생각을 깊이 하여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오판하는 경우입니다. 영의 사람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각을 영이 주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기막힌 아이디어에 사로잡혀 흥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수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도 중에, 그리고 말씀 묵상을 통하여 알 수 있게 됩니다. 육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의 생각은 언제나 불안하고, 장애물이 많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평안이며 가능성입니다. 대부분 어둠과 절망은, 생각을 통하여 침투합니다. 영의 통제를 벗어난 생각은, 언제나 위험합니다. 기도도 영으로 해야 오래하고 바르게 합니다. 육으로 기도 할 수는 있으나, 언제나 기복이 심하며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기도하면 내가 기도를 시작하지만, 성령이 기도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됩니다. 육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영으로는 알 수 있습니다. 영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을 구합니다. 영혼을 위하여 울게 됩니다.
우리 천안새로운교회 가족 모두가 성령의 능력을 입히울때까지 기도하시고, 영으로 거듭나시기 바랍니다. 영으로 판단하는 생활, 하나님을 구하는 기도생활이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