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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0%"><FONT face=바탕 size=2><STRONG>하나 되는 진리</STRONG></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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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0%"><FONT face=바탕 size=2>하나님 백성의 특징은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자랑하여 자기를 분리시키면 하나 되지 못합니다. 언어에는 분리의 언어와 통합의 언어가 있습니다. 분리의 언어는 우리와 저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주류와 비주류 등 이분법으로 자꾸 구분하는 것입니다. 반면 통합의 언어는 느헤미야 1장 6절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자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과 같은 느헤미야의 리더십입니다. 그는 모든 죄를 자신과 그의 아버지의 잘못으로 돌렸습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푸는 방법에도 "우리 안에서 푸는 방법"과 "우리 바깥에서 푸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자는 애통하고 아픔을 가지고 풀어내는 것입니다. 반면 후자는 자신만이 의롭다며 남을 정죄하고 채찍질하는 것입니다. 후자와 같은 정죄의 방법으로는 해결이 없습니다. 까발리고 뒤집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애정을 가지고 우리 안에서 풀어내야 합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의 "가장합시다"라는 章에서 사람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주기도문을 분석하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할 때 우리는 아직 아들로서의 모습으로 변화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아들행세를 하다보면 아들의 모습이 된다는 논리입니다. 위장이 현실로 변화하며 친밀한 척 하다 보면 실제 친밀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칭의를 해 주시니 성화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의롭게 됩니다. 이와 같은 논리에서 볼 때 믿음도 일종의 가장하는 것입니다. 차원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끌어 올리는 방법도 차원 높은 사람으로 취급해 줌을 통해서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갓 난 아기를 두고 그가 모든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대화하고 얘기함을 통해 그 아이가 말이 늘게 되고 지혜가 자라게 됩니다. 율법은 정죄하고 사실을 말하고 평가 절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이라 칭의하고 기대하며 하나님의 약속대로 믿어주는 것입니다. 시몬이 어떻게 베드로가 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믿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복음도 믿어주고 기대해 주는 것입니다. 믿어줄 수 있는 사람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땅에서도 부모가 믿어주고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천안새로운교회 가족여러분! 우리교회가 통합의 언어가 있길 바랍니다. 하나 됨이 있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능력이 회복되고, 서로 인정하고, 믿어주고, 본이 되는 질서가 회복 될 것입니다.</FONT></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