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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LINE-HEIGHT: 18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6pt" class=바탕글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WEIGHT: bold"><FONT size=2>내 양을 먹이라</FONT></SPAN></P>
<P style="LINE-HEIGHT: 180%; LAYOUT-GRID-MODE: char" class=주해본문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윤고딕110; FONT-SIZE: 10pt">오늘 말씀 본문의 예수님과 시몬 베드로와의 이 대화에서는 </SPAN><SPAN style="FONT-FAMILY: -가시나무M; 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가시나무M; mso-hansi-font-family: -가시나무M"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윤고딕110; FONT-SIZE: 10pt">사랑하다</SPAN><SPAN style="FONT-FAMILY: -가시나무M; 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가시나무M; mso-hansi-font-family: -가시나무M"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윤고딕110; FONT-SIZE: 10pt">와 </SPAN><SPAN style="FONT-FAMILY: -가시나무M; 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가시나무M; mso-hansi-font-family: -가시나무M"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윤고딕110; FONT-SIZE: 10pt">먹이다</SPAN><SPAN style="FONT-FAMILY: -가시나무M; 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가시나무M; mso-hansi-font-family: -가시나무M"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윤고딕110; FONT-SIZE: 10pt">라는 두 개의 동사와 </SPAN><SPAN style="FONT-FAMILY: -가시나무M; 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가시나무M; mso-hansi-font-family: -가시나무M"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윤고딕110; FONT-SIZE: 10pt">양</SPAN><SPAN style="FONT-FAMILY: -가시나무M; 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가시나무M; mso-hansi-font-family: -가시나무M"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윤고딕110; FONT-SIZE: 10pt">에 대한 두 개의 명사가 사용됩니다. 세 번의 질문과 응답은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는 동안(요 18:17, 25-27)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과 쉽게 일치됩니다. 세 번 반복되고 긴장된 베드로의 대답(</SPAN><SPAN style="FONT-FAMILY: -가시나무M; 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가시나무M; mso-hansi-font-family: -가시나무M"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윤고딕110; FONT-SIZE: 10pt">근심하였다</SPAN><SPAN style="FONT-FAMILY: -가시나무M; 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가시나무M; mso-hansi-font-family: -가시나무M" lang=EN-US>’</SPAN><SPAN style="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윤고딕110" lang=EN-US>, 17절)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양을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복직시키시고 그의 목회적 소명을 확실하게 심어 주시는 사건입니다. 여기에서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 모으는 사명, 즉 선교의 측면을 갖습니다. 동시에 양 무리에 속한 자들을 보살피는 것입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했다가 다시 주님과 관계를 회복한 경험이 있기에, 목회 사역 중에서 그러한 측면을 수행하기에 최적의 인물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젊은 시절에 누렸던 자유를 잃게 될 것이며, 십자가형을 받는 사람의 모양으로 띠를 띠우든지 묶일 것이라고 엄숙하게 예언하십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말로는 목회가 거룩한 소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사역할 때에는 성공이나 출세를 더 간절히 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전도자들이 전도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전도가 성과중심적인 모습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의 설교로 오천 명을 회심하게 했던 베드로의 모습을 꿈꿉니다. 그러나 유진 피터슨은 목회가 농사일과 흡사하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목회 사역은 헛간을 정리하고, 축사를 청소하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제거하는 것 같은 일상적인 일들입니다. 목회사역에는 영광스러운 일들도 있지만 더럽고 비참한 순간도 있습니다. 본문의 베드로처럼, 우리는 모두 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입니다. 여전히 죄가 많고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께서 </SPAN><SPAN style="FONT-FAMILY: -가시나무M; 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가시나무M; mso-hansi-font-family: -가시나무M"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윤고딕110; FONT-SIZE: 10pt">내 양을 먹이라.</SPAN><SPAN style="FONT-FAMILY: -가시나무M; 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가시나무M; mso-hansi-font-family: -가시나무M"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윤고딕110; FONT-SIZE: 10pt">고 사명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것과 동시에 더 성실하고 겸손하게 부활의 역사를 이어 나가라는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도록 소명을 받은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일을 위해 제자를 부르십니다. 우리가 완전하기 때문에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용서해 주시고 믿으시기에 부르시는 것입니다. 천안새로운교회 가족여러분, 이 새로운 부르심에 순종하는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SPA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