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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LINE-HEIGHT: 18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6pt" class=바탕글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WEIGHT: bold">기다림의 은혜</SPAN></P>
<P style="LINE-HEIGHT: 18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6pt" class=바탕글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WEIGHT: bold"></SPAN>&nbsp;</P>
<P style="LINE-HEIGHT: 180%; LAYOUT-GRID-MODE: char" class=바탕글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바탕">국화가 그 향기와 빛깔로 사랑을 받는 것은 많은 꽃들이 피어나는 봄날에는 잎만 달고 묵묵히 기다리면서 봄, 여름을 지나고 초가을의 무서리까지 견딘 후에 꽃을 피우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정말로 절망적이고 힘든 것은 기다림마저도 없는 생활이지, 기다리는 생활이 아닙니다. 기다림이란 항상 자신을 참아내는 인내와 끈기를 친구로 하고 있습니다. “기다림은 꼭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는 어느 시의 한 구절처럼 우리들의 기다림이 기다림으로 끝나고 말지라도 기꺼이 기다릴 줄 아는 삶의 자세가 필요한 때입니다. 성경에 보면 기다림과 만남의 사건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가족 70명이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한 가나안 땅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43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또한 남유다가 B.C. 586년에 바벨론에 망하고 다시 회복하는 데 70년이 차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셨던 이스라엘을 구원할 다윗의 자손이신 구세주께서는 자그마치 700여 년 후에야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렇게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세주로 오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 “너희들이 본 그대로 오리라.”고 약속하시고 나서 오늘까지 무려 2,000여 년이 흘렀습니다. 재림 시 다시 내려오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여전히 주님이 다시 오실 종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약속이 있는 기다림입니다. 이 기다림에는 소망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확실하게 약속하시는 분이고, 그 약속은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민 23:19). 오늘 본문에는 38년 동안 아픈 몸을 이끌고 고침 받기를 기다렸던 병자가 등장합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물이 움직일 때 누구든지 제일 먼저 들어가면 고침을 받는다고 하지만 이 환자는 자기 힘으로 제일 먼저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물 속에 넣어 줄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막연하게 고침을 바라지만 도저히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기다림 끝에 그가 만난 것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생각하지도 않게 찾아오신 예수님은 그를 주님의 은혜로 고쳐 주셨습니다. 9절 말씀은 이 장면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것이 바로 기다림의 은혜입니다. 천안새로운교회 가족여러분, 약속이 있는 기다림이라고 해도 막막할 때가 많이 있고 실망할 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때가 분명히 있음을 믿고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기 바랍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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