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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LINE-HEIGHT: 18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6pt" class=바탕글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WEIGHT: bold"><FONT size=2>하나님의 은혜의 출사표</FONT></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80%; LAYOUT-GRID-MODE: char" class=큰제목서체 align=justify><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SIZE: 10pt; mso-hansi-font-family: 바탕; mso-ascii-font-family: 바탕">구원은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예언(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였습니다(21절). 이사야 61:1~2에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신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SIZE: 10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lang=EN-US>“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lang=EN-US>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경제적인 가난과 영적인 가난입니다. 영적인 가난은 심령이 가난한 자로 세상의 더러운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문을 활짝 열어 주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하는 겸허한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렇게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이루어져 갔습니다. </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SIZE: 10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lang=EN-US>‘복음’이라는 말은 예수님 자체를 의미합니다.</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lang=EN-US>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그대로 구원이었습니다. </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SIZE: 10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lang=EN-US>‘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lang=EN-US>‘포로 된 자’라고 하는 말은 전쟁의 포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탄의 포로, 죄의 포로가 된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SIZE: 10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lang=EN-US>‘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SIZE: 10pt; mso-hansi-font-family: 바탕; mso-ascii-font-family: 바탕">여기 ‘눈먼 자’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육안이 먼 사람과 영안이 먼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영육간의 눈이 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SIZE: 10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lang=EN-US>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려고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SIZE: 10pt;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lang=EN-US> 여기 ‘눌린 자’는 죄와 악의 구조 하에서 압제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정치, 사회, 경제적인 구조 악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유케 하신 것입니다. </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SIZE: 10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바탕; mso-ascii-font-family: 바탕">예수님은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SIZE: 10pt; mso-hansi-font-family: 바탕; mso-ascii-font-family: 바탕">주의 ‘은혜의 해’는 희년을 말합니다. 모든 빚이 탕감되면서 땅의 공정한 분배와 같은 신분 하에서 자유를 보장받는, 새로운 삶을 창의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구원의 해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이 하나님의 예언을 성취하는 구원사건임을 믿어야 합니다. 천안새로운교회 가족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구체적인 사랑을 통하여 학교와 가정과 나라와 민족이 천국으로 변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SPA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