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strong>창16:1~16)<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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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에게 자녀를 약속한지 10년이 지나도 자녀가 생기지 않자 사래는 아브람에게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2절). 사래의 제안은 당시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하나님의 계획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3절). 사래의 여종 하갈은 임신을 했고, 그로 인해 여주인인 사래를 멸시합니다(4절). 사래는 자신이 당하는 모욕에 대한 책임을 아브람에게 돌립니다(5절). 아브람은 사례에게 모든 권한 부여하자 사래는 하갈을 학대했고, 하갈은 도망쳤습니다(6절). 하갈은 여주인의 학대를 피해 광야로 도망쳐 나옵니다.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7절) 천사가 하갈을 만납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8절) 묻습니다. 그리고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9절)... 원래 위치로 돌아갈 것을 명령합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가정을 떠난다고 해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축복의 장막을 벗어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라의 학대가 아무리 심할지라도 돌아가 참고 온순하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한 축복의 장막에 거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장막으로 돌아갈 때 크게 번성케 하리라고 약속하지만 하갈이 돌아가기를 주저하자 사자가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 창16:11.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하갈은 여호와를 만나 복의 약속을 받고 큰 위로를 얻게 됩니다. 하갈은 자신이 만난 분이 살아계신 참 하나님, 즉 아브람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고,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라고 하며 그 샘을 브엘라해로라고 불렀습니다. 하갈은 사래에게 돌아갑니다. 하갈은 사래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이 돌아가라고 해서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그 사건을 들은 사래도 마음이 누그러져서 더 이상 하갈을 학대하지 않게 됩니다. 때가 되어 하갈이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았고, 이스마엘이라 불렀습니다. 그때 아브람은 86세였습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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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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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브람과 사래의 불신앙은 큰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strong> 창세기 21장을 보면, 이스마엘이 태어난지 14년 후에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납니다. 이스마엘과 이삭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시작됩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이삭의 계통과 이스마엘의 계통은 민족적 싸움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습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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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살피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strong>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고난과 학대를 피하여 눈물과 외로움과 억울함으로 달리는 인생을 찾아와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br><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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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는 예수님이 주인된 참교회로 돌아가라는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strong> 사래는 장차 그 자손에게서 메시아가 태어날 약속의 여인으로 하나님의 복의 창구요, 구원의 창구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메시야에게로 돌아가라는 의미입니다. 하갈은 교만을 버리고 메시아가 있는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래는 거듭난 성도들로 구성된 참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갈은 이 땅의 교회에서 실망과 학대와 억울함을 겪으며 도망가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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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새로운교회 가족여러분,</strong> 복음의 참된 교회로, 그리고 메시야 되시는 예수께로 돌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