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가 있는 추석

추석은 땀 흘려 일한 사람들이 수확한 열매에 감사하는 명절입니다. 가족, 친척, 이웃은 새의 날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새가 날지 않고 모이를 쪼아 먹을 때는 그 날개가 매우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새는 날개 때문에 저 높은 곳으로 비상할 수 있고, 자신의 생명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가족과 친척과 이웃 때문에 내가 여기 있는 것이고,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고, 그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모나 조상 탓만 하고 있는 사람은 내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희망도, 발전도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은 없을지라도 내일은 있어야 합니다. 당장은 실패했더라도 내일은 성공의 자리로 옮겨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감사할 것이 없습니까? 부모님이 살아계신 것, 건강하신 것, 나의 효를 받으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녀는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나를 피로 낳아주시고, 눈물로 길러 주시며, 땀 흘려 교육시켜 주신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누구에게 감사하겠습니까?

우리는 국가를 사랑하고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서 이 나라를 통치하고 계시며, 우리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쟁이 아닌 평화의 때에, 식민지 치하나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태어나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 살고 있는 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리고 자연에도 감사하라는 것은 자연을 신격화해서 숭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연은 하나님께서 인간 삶의 터전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려드립니다. 그러므로 자연에 감사하라는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 얻어지는 모든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나를 비롯해서 가족, 친척, 이웃, 조상, 국가, 자연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롬 11:36). 그러므로 성도들에게는 이것이 감사의 조건이 되어야지, 지위, 환경, 명예, 성공, 재산이 감사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감사는 일시적이고 조건적인 감사입니다. 불신자는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게 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편 50:23)